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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탈리아 기행 15] 로마의 심장이던 포로 로마노

by ssolssolee 2023.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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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 15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로 가는 신성한 길

 
 

콜로세움에서 나와서 바로 보이는 커다란 문은
로마에서 가장 큰 개선문인 콘스탄티노 개선문이다.
315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이 개선문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의 모태가 된 건축물이다.
원래는 나폴레옹이 이 개선문을 프랑스로 가져가려 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무산되었다고 했다.

 
 

코스탄티노 개선문
코스탄티노 개선문 (Arco di Costantino)

 
 
 

코스탄티노 개선문
코스탄티노 개선문 (Arco di Costantino)

 
 

코스탄티노 개선문(Arco di Costantino)의 주인공 콘스탄티누스 황제

 

4세기에 지어진 이 개선문은 조각된 각 부분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룬 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4명이 로마제국을 다스리는 사두정치시대를 마감시키고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다.
그 중에서 혼자 황제의 자리를 탐한 막센티우스 황제에게 승리를 거둔 밀비우스 다리 전투의 스토리가 유명하다.
꿈 속에서 나타난 십자가 형상을 무기와 깃발에 새겨넣었더니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결국에 그를 로마의 황제의 자리까지 이끌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로마의 제국의 힘이 동로마 넘어가는 시대를 열었다.
동로마의 비잔티움은 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바뀌었다.
즉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라는 것이다.
 
또한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 하였다.
이제껏 로마제국의 기조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이였다.
십자가의 힘으로 자신이 황제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믿었던 콘스탄티누스는
황제가 된 이후에 기독교에 관용적인 정치를 펼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 중에 하나로 인정 받게 되었다.

 
 
 
 

포로 로마노 유적지 오픈 시간
포로 로마노 내부의 유적지 오픈 시간

 
 
 

포로 로마노는 정말 내가 생각 한 것보다 너무 컸다.
그리고 천년이나 로마의 심장이었기에
그 시간과 세월이 담긴 스토리는 어마어마하였다.
그래서 이 곳을 구경하면서 꼭 예습을 하고 왔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를 했다.
 
초행 길이라 길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유적지의 무덤?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의 유적지는 형상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도 있었다.
그래서 이 곳의 설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한 여름 가장 더운 시간대에 이 포로 로마노를 방문한 우리는
이게 어디야? 이게 뭐야? 라는 말을 계속 했던 것 같다.
그늘도 생각보다 없었기에 우리처럼 한 여름에 가실 분들은 햇빛과 더위에 철저히 준비해서 가시길 추천드려요.
그리고 꼭 물을 가지고 가시길!!!!!!!!!!!!!!!!!!!!!
잘 못하면 뜨거운 태양 아래에 열사병이나 탈수 올 수도 있습니다.

 
 
 

태양열과 지열이 한 가득

 
 
 
 
 
 

포로 로마노 주변의 지도
콜로세오 포로로마노 주변의 지도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라틴어로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이었던
포로 로마노는 기원전 8세기부터 천년이 넘게 과거의 로마의 심장과 같은 곳이였다.
이 곳에서 정치와 종교 경제 그리고 그 시대의 시민들의 장이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테베레 강이 범람하면서 숨겨진 곳이 18세기에 발굴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포로 로마노는 원래 늪지대였다.
기원전 7세기부터 개간하여 지하의 관개시설을 통해 이 곳의 물을 인근 테베레강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의 생활권 중심지가 되어 사람들이 모이고 포로 로마노가 형성되었다.
로마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의 뜻을 가진 포로 로마노에서 포럼(Forum)이란 단어가 나왔다.
포룸(Forum)에서 파생된 것이다.
 
포로 로마노에서 보이는 많은 건축물과 기둥 대리석 조각들은
지어진 시대도 다 다르고 지어진 것도 중구난방?으로 지어졌기에 
유적지 모양과 사진에서 나온 이미지와 맞춰보면서 보물 찾기?하듯 정보를 찾아냈다.
안그럼 그냥 슈욱 지나가게 될 수밖에 없다.
로마의 황제들이 여럿이 이 곳을 정비하고자 했지만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그래서 나는 이 여행의 책임자이자 가이드로 여행책자를 그냥 들고 갔다. 내 의지에 칭찬해!!!!)
 

 
(그리하여 나의 뒤의 글이 중구난방이 될수도 있음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티투스 개선문
티투스 개선문(Arco di Tito)

 
 
 
 

티투스 개선문(Arco di Tito)

 

포로 로마노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축물 중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으로 티투스 황제의 예루살렘 정복한 기념으로 서기 81년에 세워졌다.
개선문의 한 부분에 예루살렘에서 성전에서 메노라(일곱 촛대) 등 성스러운 기물들을 탈취한 것을 조각해놨다. 
이 메노라는 현제 바티칸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 티투스 개선문은 
로마 제국을 창건한 율리우스 가문에서 자신의 가문 플라비아누스 가문이 로마를 다스리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는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지어졌다.
성스러운 길(via Sacra) 정 가운데에 위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유명안 네로 황제가 율리우스 가문의 마지막 황제이었다.
네로가 죽고 로마를 차지하기 위해 네 명의 장군이 자신이 황제라고 로마에 입성하였다.
하지만 티투스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만이 결국에 로마제국을 차지하게 되었다. (69년)
그리고 아들인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함락시킨 후 아버지가 있는 로마에 와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79년)
이 개선문에서 보이는 독수리는 티투스 황제를 나타낸다고 한다.
 
티투스는 그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시작한 콜로세움을 완공한 인물이다. (80년)
그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2년 뒤인 81년 열병으로 그의 나이 40세에 죽게 된다.
(그 후에 황제로 오른 동생인 도미티아누스가 독살했다는 썰도 있다.)

 
 
 
 
 
 
 
 
 
 
 

바실리카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막센티우스 (Basilica di Massenzio)




바실리카 막센티우스(Basilica di Massenzio)


포로 로마노 입구에 들어서 마자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보는 순간 와! 저 것은 뭐지하며 다가가게 된다.
막센티우스 황제가 지은 바실리카이다.
막센티우스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패하고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어 312년에 완공하였다.
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가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하면 이 건축물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바실리카는 거의 뼈대만 남아있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원래의 규모에 대해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했다.
기둥과 기둥의 흔적?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 기둥들을 통해서 공간을 나눴고
그 분리된 공간을 통해 로마제국의 지도자들은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 할 수 있게 했다.
지금 말로 하자면 행정부라고 보면 되겠다.
이 건물의 장식품들과 내부의 대리석 등은 중세시대를 걸쳐 귀족들이 본인들의 집을 꾸미기 위해 채굴되었다고 한단다.

 
 
 
 
 

바실리카 막센티우스
실로 어마한 규모를 보여주는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내부

 
 
 
 
 
 

 

로물루스 신전 (Tempio di Romolo)
로물루스 신전 (Tempio di Romolo)

 

 

로물루스 신전 (Tempio di Romolo)


막센티우스는 자신의 아들 로물루스가 15세 어린 나이에 죽자 아들을 위한 신전을 지었다.
건국의 아버지 로물루스를 위한 신전이 아니라 왕자?를 위한 장소였다.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지붕 위에 십자가 있는 건물로 성당이자
로마의 5현제 중 네 번째 황제인 안토니누스가 그의 아내 파우스티나 황비를 위해 141년에 지은 신전이다.
이 신전은 이후 11세기부터 산 로렌초 미란다 성당이 지어져 이용되었기에 포로 로마노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한 형태의 건축물.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선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손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서 양자로 택해 황제가 된 인물이다. 로마를 다스리기에 아직 어렸던 황제를 잘 키워달라는 선대 황제의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
이 안토니우스는 양아버지를 잘 모셨고 아내인 파우스티나를 극진히 사랑했으며 양자인 마르쿠스도 잘 키웠다.
그래서 양자 황제가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파우스티나를 신격화 하여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 신전은 1150년에 성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리석 기둥 안에 존재하는 건물 자체의 색이 다른데 이것이 산 로렌초 인 미란다 성당이다.
신기하게 신전 기둥이 성당을 감싸고 있다.
 
청록색의 성당 정문으로 상당히 들어가기 어려워 보이는 신기함을 가지고 있는 데
이는 이 성당의 앞 부분인 파사드를 건축할 때 땅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포로 로마노가 땅 아래에 숨겨져 있던 것을 건축물에서 나타나는 경계로 볼 수 있다.
 
포로 로마노는 테베레 강의 범람과 세월의 야속함??을 겪었기에
우리가 바라보는 위치는 과거 로마시대보다 2층? 위라고 한다.
과거 로마인은 우리보다 더 아래에서 이 신전을 바라보야 했기에 목이 상당히 아팠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세상에 이런 나라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로마제국의 지나간 영광을 바라본다.
풀은 무성하고 건축물은 허물어져 부분으로 그 존재를 알리며
건축 자재는 돌맹이처럼 흔적만을 알게 한다.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와 나 그리고 갈매기

 
 
 

지나간 역사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곳 포로 로마노의
일부분이라도 잘 담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사실은 생각 보다 넓고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몰라 헤메고 있는 중.
 
 

쿠리아 (Curia)

뒤에 있는 그나마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원로원 건물(Curia) 같다.
성당 건물로 활용되어 채석장으로 사용되지 않을 수 있었다.
로마의 정치체계는 지금의 민주주의의 시스템의 근간이 되었다.
그것을 알려주는 원로원.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었지만 입법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국회의사당이라고 할 수 있다.
300명 정도의 원로원이 모여 토의하고 심의했던 장소였다.
기원전 4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3세기 말의 화재로 불타 없어졌지만
지금의 형태는 무솔리니 시대에 옛 모습대로 복원 되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세베루스 왕조

 

공사 중이었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Arco di Settimo Severo)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중동 지방인 파르티아를 정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두 아들에 의해 203년에 지어졌다.
우리가 갔었을 때 당시에는 공사 중이였는지
가까이 가서 볼 수 없어 아쉬었다.
 
셉티미우스는 로마 제국 최초로 아프리카 속주 출신의 황제이었다.
꿈을 믿었던 것이었을까? 장군이었던 그는 쿠테타로 로마를 차지하고 자신의 적들을 점차 처리하였다.
로마의 안의 혼란을 잠재우자마자
파르티아와의 전쟁으로 로마의 오랜 적인 페르시와의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2차까지 진행된 파르티아 전쟁에서 그는 승리를 거두었다.
 
자신의 위치와 정당성 그리고 업적을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그를 기념하는 개선문이 이 자리에 만들어 졌다.
그리하여 세베루스 가문은 이어서 로마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에 그의 아들인 카라칼라 황제는 카라칼라 목욕장을 거대하게 건설을 하여
로마 시민들에게 환심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Tempo di Castore e Polluce)

 
 

카르토르와 폴룩스 신전

로마 신화의 유피테르(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인 카르토르와 폴룩스를 위한 신전
기원전 484년에 지어진 신전는 이 두 신의 도움으로 로마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레길루스 호수 전투 기원전 499)는 썰이 전해진다.
 
지금은 3개의 코린트 스타일의 기둥과 그 부분만 남아있다.
신전에는 백마와 함께 있는 쌍둥이 형제 조각상이 있는데 지금은 캄피돌리오 광장 계단 위에 놓여져 있다.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의 건무 내부

 
 
 
 
 
 
 

콘코르디아 신전과 공공기록 관리소
신전들과 공공기록 관리소

 

투르누스 신전과 베스파시아누스 신전
콘코르디아 신전과 그리고 공공기록 관리소 타불라리움(Tabularium)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햐얀색 건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도 보인다.
이탈리아 반도에 있던 도시 국가들을 통일해 하나의 이탈리아 국가를 만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초대 국왕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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